염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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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구축(memory construction), 즉 ‘기억하는 것’은 사고의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이러한 학습 과정을 대신 수행하게 되면, 인간의 예측–오류–수정의 순환, 즉 보완적 학습 체계의 핵심 메커니즘이 차단된다

비판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단편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정보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고 그 타당성을 따져 보는’ 일이다

정보를 ‘아는 것’과 그것을 ‘사고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정보 간의 인과적·조건적 관계를 스스로 탐색하거나 검증하지 않기 때문에, 학습자는 관계적 표상을 구축하지 못한다. 그 결과 표면적으로는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이어지지 않은 정보의 파편들만 머릿속에 존재하게 된다.

인지적 외주화를 통해 지식을 피상적으로 습득한 사람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힘을 잃고, 외부의 지시나 권위, 혹은 기술적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이때 문제 해결력이 저하된 개인은 타인의 논리를 검증하거나 외부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잃는다. 이는 단순한 사고력의 약화가 아니라, 정당성을 분별할 수 있는 사유 능력의 상실이다.

결국 교사는 학습자가 사유의 지구력을 기르고, 기억의 구조 위에서 사고를 확장하도록 돕는 존재이다. AI가 사고를 대신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교사는 인간이 스스로 사고하고 존재할 수 있도록 인지적 환경을 설계하는 사유의 불씨를 지키는 사람, 그리고 학습의 인간적 품위를 지탱하는 최후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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